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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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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명 |
반차도2 |
| 시대 |
1759 |
| 초록 |
1759년(英祖 35) 6월에 영조가 계비(貞純王后)를 맞아들이는 의식의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권말(卷末)에 그려진 반차도는 별궁(別宮)에서 친영의(親迎儀)를 마친 영조가 친히 정순왕후를 대궐로 모셔오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반차도는 크게 두부분으로 구성되어, 반차도의 앞부분에는 왕의 행차가 뒷부분에는 왕비의 행차가 그려져 있다. 왕의 연(輦)은 부연(副輦)의 뒤에 있으며, 왕비의 연 앞에는 왕비의 책봉과 관계된 교명(敎命)·옥책(玉冊)·금보(金寶)를 실은 교명요여, 옥책요여, 금보요여가, 명복채여가 그려져 있다. 왕의 연은 사방을 열어 놓아 내부를 볼 수 있게 하였으며, 왕비의 연은 내부를 볼 수 없게 하였다.
반차도에서 인물과 함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바로 이 가마이다. 왕과 왕비의 가마인 연은 밑에 수레를 달아 말이 끄는 것으로 주로 궁궐 밖의 행차에 사용되었으며, 여는 사람이 어깨에 메고 다닌 것으로 궁궐 밖의 행차에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의 연은 옥개(屋蓋)에 붉은 칠을 하고 주홍과 황금으로 장식했으며, 둥근 기둥 네 개로 작은 집을 지어 위에 올려놓고 사방에 붉은 난간을 달아 겉에는 운룡(雲龍)을 그렸으며, 안에는 운봉(雲鳳)을 그렸다. 또한 처마에도 여러 가지 조각으로 장식했으며 소련,대련,평련 등이 있었다. 오례의(五禮儀)에 따르면 대련은 붉은 바탕에 주홍으로 칠을 하고, 그림은 황금을, 장식은 감금철(甘金鐵)을 쓰고 좌우에는 길다란 들채가 있는데, 양끝에는 도금한 용두(龍頭)를 만들어 덮어 씌웠다고 한다. 왕비의 대련은 적색 바탕에 주홍색 칠을 하고, 그림은 황금을 쓰고, 장식은 사금철(絲金鐵)을 사용한다. 좌우에는 길다란 들채가 있고, 양끝에는 도금한 용두(龍頭)를 만들어 덮어 씌운다고 하였다. |
| 출처 |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英祖貞純后嘉禮都監儀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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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명 |
반차도3 |
| 시대 |
1759 |
| 초록 |
1759년(英祖 35) 6월에 영조가 계비(貞純王后)를 맞아들이는 의식의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권말(卷末)에 그려진 반차도는 별궁(別宮)에서 친영의(親迎儀)를 마친 영조가 친히 정순왕후를 대궐로 모셔오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반차도는 크게 두부분으로 구성되어, 반차도의 앞부분에는 왕의 행차가 뒷부분에는 왕비의 행차가 그려져 있다. 왕의 연(輦)은 부연(副輦)의 뒤에 있으며, 왕비의 연 앞에는 왕비의 책봉과 관계된 교명(敎命)·옥책(玉冊)·금보(金寶)를 실은 교명요여, 옥책요여, 금보요여가, 명복채여가 그려져 있다. 왕의 연은 사방을 열어 놓아 내부를 볼 수 있게 하였으며, 왕비의 연은 내부를 볼 수 없게 하였다.
반차도에서 인물과 함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바로 이 가마이다. 왕과 왕비의 가마인 연은 밑에 수레를 달아 말이 끄는 것으로 주로 궁궐 밖의 행차에 사용되었으며, 여는 사람이 어깨에 메고 다닌 것으로 궁궐 밖의 행차에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의 연은 옥개(屋蓋)에 붉은 칠을 하고 주홍과 황금으로 장식했으며, 둥근 기둥 네 개로 작은 집을 지어 위에 올려놓고 사방에 붉은 난간을 달아 겉에는 운룡(雲龍)을 그렸으며, 안에는 운봉(雲鳳)을 그렸다. 또한 처마에도 여러 가지 조각으로 장식했으며 소련,대련,평련 등이 있었다. 오례의(五禮儀)에 따르면 대련은 붉은 바탕에 주홍으로 칠을 하고, 그림은 황금을, 장식은 감금철(甘金鐵)을 쓰고 좌우에는 길다란 들채가 있는데, 양끝에는 도금한 용두(龍頭)를 만들어 덮어 씌웠다고 한다. 왕비의 대련은 적색 바탕에 주홍색 칠을 하고, 그림은 황금을 쓰고, 장식은 사금철(絲金鐵)을 사용한다. 좌우에는 길다란 들채가 있고, 양끝에는 도금한 용두(龍頭)를 만들어 덮어 씌운다고 하였다. |
| 출처 |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英祖貞純后嘉禮都監儀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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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명 |
반차도4 |
| 시대 |
1759 |
| 초록 |
1759년(英祖 35) 6월에 영조가 계비(貞純王后)를 맞아들이는 의식의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권말(卷末)에 그려진 반차도는 별궁(別宮)에서 친영의(親迎儀)를 마친 영조가 친히 정순왕후를 대궐로 모셔오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반차도는 크게 두부분으로 구성되어, 반차도의 앞부분에는 왕의 행차가 뒷부분에는 왕비의 행차가 그려져 있다. 왕의 연(輦)은 부연(副輦)의 뒤에 있으며, 왕비의 연 앞에는 왕비의 책봉과 관계된 교명(敎命)·옥책(玉冊)·금보(金寶)를 실은 교명요여, 옥책요여, 금보요여가, 명복채여가 그려져 있다. 왕의 연은 사방을 열어 놓아 내부를 볼 수 있게 하였으며, 왕비의 연은 내부를 볼 수 없게 하였다.
반차도에서 인물과 함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바로 이 가마이다. 왕과 왕비의 가마인 연은 밑에 수레를 달아 말이 끄는 것으로 주로 궁궐 밖의 행차에 사용되었으며, 여는 사람이 어깨에 메고 다닌 것으로 궁궐 밖의 행차에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의 연은 옥개(屋蓋)에 붉은 칠을 하고 주홍과 황금으로 장식했으며, 둥근 기둥 네 개로 작은 집을 지어 위에 올려놓고 사방에 붉은 난간을 달아 겉에는 운룡(雲龍)을 그렸으며, 안에는 운봉(雲鳳)을 그렸다. 또한 처마에도 여러 가지 조각으로 장식했으며 소련,대련,평련 등이 있었다. 오례의(五禮儀)에 따르면 대련은 붉은 바탕에 주홍으로 칠을 하고, 그림은 황금을, 장식은 감금철(甘金鐵)을 쓰고 좌우에는 길다란 들채가 있는데, 양끝에는 도금한 용두(龍頭)를 만들어 덮어 씌웠다고 한다. 왕비의 대련은 적색 바탕에 주홍색 칠을 하고, 그림은 황금을 쓰고, 장식은 사금철(絲金鐵)을 사용한다. 좌우에는 길다란 들채가 있고, 양끝에는 도금한 용두(龍頭)를 만들어 덮어 씌운다고 하였다. |
| 출처 |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英祖貞純后嘉禮都監儀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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