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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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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명 |
헌종효현후가례도감2 |
| 시대 |
1837 |
| 초록 |
1837년 가례는 제24대 왕 헌종(憲宗)과 효현후(孝顯后) 김씨의 가례이다. 반차도의 면수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를 보여 모두 68면의 길고 화려한 반차도이며 그 중 왕의 행렬이 제1면에서 40면까지이고 나머지 제41면에서 68면이 왕비의 행렬이다. 이 그림은 제 58면으로 왕비의 행렬에 해당한다. 왕비의 행렬 시작 부분도 왕의 행렬과 대동소이하며 왕비의 연(輦)을 끄는 인원은 왕과 마찬가지로가 24인이다. 이 연은 휘장의 육각형 문양을 녹색으로 칠했다. |
| 출처 |
장서각소장 가례도감의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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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명 |
현무 |
| 시대 |
1800 |
| 초록 |
고대 중국에서는 처음에는 하나의 알과 같았던 천지(天地)에서 반고(盤古)씨가 생겨나서, 그의 키가 커짐에 따라 하늘과 땅이 나눠졌다고 하는 반고전설이 있는데, 옛그림에서는 반고씨를 거북으로 그리고 있다. 중국신화의 신들 계통 속에 현무는 지위가 혁혁한 대신(大神)이다. 현무는 하늘의 28수중 북방신이며 또 전설 속의 수신(水神)·해신(海神)이다. 상고신화중에서 현무의 본명은 현명(玄冥)이고 물의 신이다. 현명은 곤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옛 신화에서 곤이 홍수를 다스렸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순직하였으며 사후에 그 혼이 변하여 세발 달린 자라가 되었다고 말한다. 전설중에 곤은 우산(羽山)에서 죽었는데, 우산은 전설 속에서 북극에 있는 산이다. 또 다른 면에서 현명의 명이라는 글자는 무(武)자와 서로 통한다. 이것이 바로 '현무'라는 이름의 유래이다. 그러나 무(武)자는 또 다른 단어인 '勇武'라는 의미를 갖는데, 『예기·곡례』중에서 공영달은 현무가 무용(武勇)으로 이름난 것은 거북이에게 껍질이 있어 업신여김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해석하였으며, 송(宋)의 고사손(高似孫)은 『위략』에서 거북은 물에 살며 물은 북쪽에 속하고 그 색이 검어서 현(玄)이라 한다. 거북에는 껍질이 있어서 공격을 막을 수 있으므로 무(武)라 한다. 라고 하였고, 『백호통』에는 영묘한 거북은 신구(神龜)이며 흑색의 정화로 오색이 선명하여 존망과 길흉을 안다. 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중국의 고대사유체계에 근본을 두고 있기 때문에 『예기』에서 언급된 사령(四靈)에 거북이(龜)가 기린(麟), 봉황(鳳), 용(龍)과 함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사령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천되어 거북은 현무로 대체되는 것이다. 현무의 형태는 漢代에는 거북이만으로 표현되던 것이 『후한서』 王梁傳에 보면 '玄武謂龜蛇'라고 되어 있어 거북이와 뱀의 합쳐지게 된다. 물론 거북의 몸에 뱀이 구불구불 말고 있는 기괴한 모양인데, 한대에는 비교적 단순하게 말고 있었지만, 그 이후에 심해지게 된다. |
| 출처 |
정조건릉산릉도감의궤(正祖健陵山陵都監儀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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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명 |
호도 |
| 시대 |
19세기 |
| 초록 |
호랑이의 얼굴은 무서움이 아니라 우습고 친근하며 매우 해학적인 표정들이다. 소나무에 까치가 앉고 그 밑에 호랑이가 앉아 있는 그림을 작호도라고 하는데, 호랑이 그림에 까치가 등장하는 것은 민화 가운데 가장 독특한 유형이다. 호랑이 가죽은 문양이 아름다워 장식용으로 스이는 등 유용했으나 귀하게 여겼으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구할 수 없었던 호랑이 가죽 대신에 종이에 그린 호표피도로 집안을 장식했다. |
| 출처 |
李朝の 民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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