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
칼춤이라고도 부르며, 원래는 민간에서 가면무로 행하던 것인데, 조선 순조때 궁중정재로 채택되었고, 궁중연희가 된 뒤로는 가면이 없어졌다. 신라 창(黃倡)이 검무를 잘 추어 유명했으며 백제의 왕 앞에서 검무를 추다가 ... 칼춤이라고도 부르며, 원래는 민간에서 가면무로 행하던 것인데, 조선 순조때 궁중정재로 채택되었고, 궁중연희가 된 뒤로는 가면이 없어졌다. 신라 창(黃倡)이 검무를 잘 추어 유명했으며 백제의 왕 앞에서 검무를 추다가 칼을 던져 왕을 죽이고 황창 자신은 잡혀 죽임을 당하였다. 신라 사람들이 애국소년 황창을 기리기 위하여 황창 모습의 가면을 쓰고 검무를 추기 시작한데서 유래하는 춤으로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가면은 쓰지 않고 여성 무용수에 의해 매우 유연한 춤사위로 공막무, 첨수무라는 이름으로 궁중연례에 자주 연행되었으며 각 지방 감영에 설치된 교방청에서 전승되어 지역 명칭에 따른 여러 종류의 검무가 전해지고 있다. 복식으로는 戰服을 입고 戰帶를 띠며 戰笠을 쓴다. 4명의 무원들이 추는 춤이다. 항장무에서 항백이 검을 소맷자락으로 막았다는 뜻으로 , 공막무라고 했다가 그 후에 검무 또는 검기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