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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악정재. 신라시대부터 시작된 처용무는 다섯 사람이 처용 가면을 쓰고 오방(五方)에 서서 추는 춤이다. 다섯 무원이 각각 청, 홍, 황, 흑, 백의 단의를 오방에 맞추어 입고 서서 처용 가면과 사모를 쓰고 홍록흉배,... 향악정재. 신라시대부터 시작된 처용무는 다섯 사람이 처용 가면을 쓰고 오방(五方)에 서서 추는 춤이다. 다섯 무원이 각각 청, 홍, 황, 흑, 백의 단의를 오방에 맞추어 입고 서서 처용 가면과 사모를 쓰고 홍록흉배, 초록천의, 금동혁대를 띠고 백피혜를 신고 춤을 춘다. 춤의 시작은 한 사람씩 무대에 나가 한 줄로 선 채 처용가를 일제히 부르고, 노래가 끝나면 선 자리에서 5명이 두 팔을 올렸다 내리고 서로 등지고 선다. 발 돋음춤으로 3보 전진하여 4방으로 흩어져 서로 등지고 추는 상배무(相背舞), 왼쪽으로 돌며 추는 회무(回舞)를 마친 뒤, 중무가 4방의 무원과 개별적으로 대무(對舞)하는 오방수양수무를 춘다. 이 춤이 처용무의 절정이다. 이어서 일렬로 북향하고 봉황음을 제창한 다음 낙화유수무(落花流水舞)를 추면서 한 사람씩 차례로 퇴장한다. 처용무는 호방한 남성적인 성격의 춤이며, 현재 전하는 궁중무용 가운데 가장 오래된 춤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헌강왕은 용왕의 한 아들 처용을 서울로 데려와 미녀로서 아내를 삼게 하고 벼슬까지 주었다. 역신(疫神)이 아내를 범하는 현장을 목격한 처용은 처용가를 지어 부르며 춤을 추자 역신이 방문 밖으로 달아났다고 전한다. 그리고 처용에게 감격한 역신은 처용의 화상(畵像)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집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이로 인해 신라시대 이후 처용의 화상은 호부(護符)로서 여기어져 악귀를 몰아내는 목적에서 가면무로 행해졌다. 그것이 바로 처용무이다 처용무는 5방(五方) 처용무라고도 하며, 5방을 상징한 동(東)의 청(靑), 남(南)의 홍(紅), 중앙의 황(黃), 서(西)의 백(白), 북(北)의 흑(黑)으로 5인의 군무(群舞)로 되어 있다. 처용무는 본래 나례(儺禮)와 같은 벽사진경(僻邪進慶) 의례에서 연행되던 것인데 후에 궁정과 관아의 연향(宴享)에서도 악귀를 몰아내기 위하여 추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