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Home > 검색 > 연도별 원본자료 색인 |
검색결과 |
|
|
 |
|
| 자료명 |
숙종가례도감의궤반차도 |
| 시대 |
1671 |
| 초록 |
1671년 왕세자(후의 숙종)가례 반차도는 육필(肉筆)과 판화가 혼합되어 나타난 최초의 예이다. 반차도의 인물들은 판화로 윤곽선을 찍은 후 채색을 가하고 지물들은 육필로 그려 넣었다. 화려한 깃발과 의장용 창검이 바람에 휘날리는 왕의 행렬에 동원되는 의장물들은 크게 깃발류, 가리개, 무기류 등으로 구분된다. 깃발은 보는 이들의 경탄과 존경을 불러일으킨다. 해나 비 또는 먼지를 가리기 위한 가리개에는 산, 선(扇), 개(盖)등이 있다. 무기류는 왕을 호위하고 위엄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부(斧), 작자(斫子), 도(刀), 장(杖), 봉(棒), 골타(骨朶), 과(瓜), 등, 한(罕), 필(畢) 등이 있다. |
| 출처 |
장서각소장 가례도감의궤 |
|
| 자료명 |
숙종가례도감 반차도 |
| 시대 |
1681 |
| 초록 |
숙종과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와의 가례로 17세기에 거행된 왕의 대표적인 가례 반차도이다. 1681년 5월에 거행된 가례의 반차도는 19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왕비가 동뢰연(同牢宴)을 치르러 입궐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그래서 반차도에는 왕비의 연 하나만이 보인다. 제 6,7,8,9,10,11면까지 이어지는 왕비의장은 세자빈의 의장보다 훨씬 복잡하고 화려하다. 이 그림은 제 9면으로 9인의 기마내관(騎馬內官)의 행렬이 보이고 이어서 7인의 기마금군(騎馬禁軍)이 화살통을 등에 메고 가는 모습이 있다. 내인(內人)은 마부를 대동하였으나 금군은 마부 없이 간다. |
| 출처 |
장서각소장 가례도감의궤 |
|
| 자료명 |
까치호랑이그림 |
| 시대 |
18세기 |
| 초록 |
까치호랑이는 민화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며 해학적이고, 풍자적이며, 추상적인 표현과 다양한 채색으로 조선 후기 민중의 심성을 잘 표현한 그림으로 설명된다. 설화에서는 대개의 경우 말쑥한 까치한테 골탕을 먹는 바보 같은 호랑이가 나오곤 하는데, 이 설화가 까치 호랑이 그림의 바탕이되는 설화라고 보고 있다. 소나무와 같이 등장하는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해 주는 길조(吉鳥)인 동시에 나라를 상징하는 새라고 한다. 호랑이는 액운을 막는 상징으로 즐겨 그렸다. 길흉화복을 좌우하는 서낭신은 까치호랑이를 그의 신탁을 시행하는 사자(使者)로 설정하여, 집집마다 돌보아 주어야 하는 사자의 기능과 역할을 까치로 하여금 하게 하였다고도 한다. |
| 출처 |
李朝の 民畵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