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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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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명 |
반차도7 |
| 시대 |
1759 |
| 초록 |
1759년(英祖 35) 6월에 영조가 계비(貞純王后)를 맞아들이는 의식의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권말(卷末)에 그려진 반차도는 별궁(別宮)에서 친영의(親迎儀)를 마친 영조가 친히 정순왕후를 대궐로 모셔오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반차도는 크게 두부분으로 구성되어, 반차도의 앞부분에는 왕의 행차가 뒷부분에는 왕비의 행차가 그려져 있다. 왕의 연(輦)은 부연(副輦)의 뒤에 있으며, 왕비의 연 앞에는 왕비의 책봉과 관계된 교명(敎命)·옥책(玉冊)·금보(金寶)를 실은 교명요여, 옥책요여, 금보요여가, 명복채여가 그려져 있다. 왕의 연은 사방을 열어 놓아 내부를 볼 수 있게 하였으며, 왕비의 연은 내부를 볼 수 없게 하였다. 왕의 행렬에 동원되는 의장물들은 크게 깃발류, 가리개, 무기류 등으로 구분된다. 깃발은 보는 이들의 경탄과 존경을 불러일으킨다. 해나 비 또는 먼지를 가리기 위한 가리개에는 산, 선(扇), 개(盖)등이 있다. 무기류는 왕을 호위하고 위엄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부(斧), 작자(斫子), 도(刀), 장(杖), 봉(棒), 골타(骨朶), 과(瓜), 등, 한(罕), 필(畢) 등이 있다. 이 장면에 보이는 가마는 왕의 연 앞에 먼저 등장하는 사고에 대비한 빈가마인 부련(副輦)이고, 부련의 좌우에는 각 10명의 창검군(槍劍軍)이 창을 높이 들고 행렬을 따라간다. |
| 출처 |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英祖貞純后嘉禮都監儀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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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명 |
경모궁의궤향사반차도설 |
| 시대 |
1784 |
| 초록 |
사도세자(1735~1762)와 그의 사당인 경모궁에 관계된 기록과 제사의식을 정리한 의궤가 경모궁의궤이다. 사도세자가 사망한 직후인 1764년 봄에 경복궁 서쪽 순화방에 사도묘(思悼廟)를 지었다가 여름에 창경궁 홍화문 밖으로 옮겨서 수은묘(垂恩廟)라 하였고, 정조가 즉위한 1776년에 사도세자에게 장헌세자라는 존호를 올리면서 수은묘를 경모궁으로 개축하였다. 정조는 경모궁안에 자신의 초상화를 걸어두고 항상 부친의 사당을 바라보게 하였다. 본 의궤에는 사도세자에 관한 기록과 함께 경모궁의 배치도인 본궁전도, 제사의식 때의 위치를 그린 향사반차도설, 제례에 쓰인 악기를 그림으로 그린 악기도설 등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본 의궤는 국왕이 친히 열함한 어람용으로서 초록빛의 비단 표지가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
| 출처 |
규장각명품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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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명 |
가교도1 |
| 시대 |
1795 |
| 초록 |
가마는 신분과 계급 또는 용도에 따라 그 형태와 꾸밈새가 다양하다. 국왕과 왕비가 타던 가마를 연(輦)이라 한다. 연은 왕권을 상징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규모가 웅장하고 온갖 장엄을 다했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수록되어 있는 가교도에는 당시 행차에 사용되었던 가마의 제작에 쓰인 각종의 장식들이 도면으로 잘 실려있다. 박쥐, 모란 등 왕실의 권위와 안녕을 상징하는 문양들이 빈틈없이 빼곡하게 채워져있어서 그 정교함의 정도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
| 출처 |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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