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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 문자도-효제2
시대 19세기
초록 문자도는 표의 문자인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 의 여덟 글자를 여러 가지로 변형하고 글자의 안과 획에 그 뜻에 관계되는 유교의 핵심 사상과 윤리관(효도, 형제와 이웃에 대한 우애, 나라에의 충성, 서로에 대한 믿음, 에절, 의리, 청렴, 부끄러움)을 나타낸 그림을 그려넣어 8곡 병풍으로 꾸민 것이다. 이것을 효제도 병풍이라 한다. 문자와 그림을 배합함에 있어 문자가 지니는 의미와 관련된 기물이나 고사를 인용하여 그리기도 하였다. 이 중 제(悌)자에는 형제의 우애와 정을 읊은 『詩經』 小雅의 상체편에 나온 상체지화(常逮之華)에 따라 접동새나 집비둘기 한쌍과 상체라고 하는 산앵두나무를 소재로 한다. 또 매, 죽, 송 등의 세한삼우와 삼국지의 관우, 유비, 장비가 도원결의하는 모습을 그려 표현하기도 한다. 이 그림에서는 집비둘기 한쌍을 그려넣었다. 효(孝)자(字)는 효자에 관한 고사에 나오는 잉어, 죽순, 부채, 귤, 거문고 등이 효의 상징물로서 그려진다. 이 그림에서는 효자(孝字) 위에 잉어를 그려넣었다. 잉어는 진(晉)나라 왕상과 관련된 소재로 왕상이 마음씨 고약한 계모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그 계모를 위해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드렸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며, 죽순은 중국 오(吳)나라 맹종과 관련된 소재로 맹종이 연로한 모친의 병을 고치기 위해 눈이 쌓인 대밭에 들어가 뜨거운 눈물로 죽순을 돋아나게 하여 그것을 캐어 드렸다는 뜻깊은 고사를 담고 있는 것이다.
출처 李朝の 民畵
자료명 백호1
시대 1800
초록 호랑이는 고대에는 아주 보편적이었고 지금도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호(虎)는 호랑이의 줄무늬를 상징하는 어근  와, 그 아래에 짐승이 인간처럼 똑바로 선 다리를 뒤에 세운 것을 암시하는  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에서 호랑이는 맹수의 왕으로 불렸고, 그것의 실제나 혹은 상상적인 특징으로 인해 다른 난폭한 동물보다 많이 비유되었다. 호랑이는 군사적인 용기를 상징한다. 그래서 중국의 군사들은 때때로 호랑이 가죽이나 꼬리등을 본따서 옷을 만들어 입었다. 그리고 전투에서 마치 호랑이가 실제로 으르렁거리듯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아갔는데, 그들은 이 함성이 적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위엄과 사나움의 상징으로, 병사의 특징인 맹렬과 용기에 대한 모델로 취급되었고 그 존재와 으르렁거림은 위험이나 공포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 호랑이는 작품속에서 2가지 유형으로 등장하는데, 십이지(十二支)중의 호랑이와 사신(四神)중의 백호(白虎)로 크게 구분된다. 사신은 4개의 신으로 이것은 동서남북 사방의 신을 상징한다. 전설의 황제(黃帝)는 제후를 관도(官途)에 봉할 때, 사방을 상징했던 사(祠)의 색토(色土)를 부여하였다.(『史記』) 즉 동방에 부임하는 사람에게는 청토를 주고, 서방의 사람에게는 백토를 남방의 사람에게는 주토를 그리고 북방의 사람에게는 흑토를 주어, 황토를 중심으로 한 국가의 유기적인 관계를 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상태는 그대로, 중앙을 중심으로 했던 세계관으로 확립되게 된다. 『예기』에도 사령(四靈)을 들어서 동은 푸른 용형의 형태를 따서 칠성(七星)의 숙(宿)을 정하고, 서는 흰 호랑이의 형태를 따서, 남은 붉은 주작형에서, 북은 검은 현무의 형태에서 모방하였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옛날에는 기린, 봉황, 거북, 용이 사령이었지만, 점점 시대가 흐르면서 전술한 청룡, 백호, 주작, 현무로 바뀌게 된다. 즉 동서남북의 상징이 변하여, 기린이 호랑이로 교체되고 거북이 현무로 바뀌었으며, 봉황이 붉은 작(雀)로 바뀌어 온 것이다. 기린이 호랑이로 대체된 것은 殷중기전후부터였는데, 도철의 호랑이가 사실적 실감과 힘의 지도성을 가져왔기 때문일 것이다. 상상으로 구성된 기린에 비해 호랑이는 객관적 현실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강한 매력이 있었을 것이다. 요약하면 호랑이는 실재하는 동물(動物)로 그 용감함과 용맹스러움이 모든 동물의 왕자(王者)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출처 정조건릉산릉도감의궤(正祖健陵山陵都監儀軌)
자료명 불자도1
시대 19세기
초록 민화의 소재들은 순수감상을 위한 것들도 있지만, 그 이외에 기복축사(祈福逐邪), 벽사진경, 권선징악(勸善懲惡)과 같은 기원이나 소망, 그리고 민간신앙이나 종교적인 측면을 강하게 띠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문자도의 여덟 글자를 보면 일상생활의 도덕이나 윤리규범이 담겨있고, 책거리 그림에는 학문 존중의 뜻도 내포되어 있다. 특히 문자도는 당시 서민대중을 유교적 도덕관으로 교화시키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값싼 가격으로 다량 보급 가능했던 문자도는 서민사회를 유교적 도덕이나 윤리속에 질서있게 유지될 수 있도록 기여했으며, 모란꽃이나 알을 많이 낳는 물고기와 게, 그리고 백동자 등이 많이 그려진 것은 부귀영화(富貴榮華)나 부귀다남(富貴多男), 자손번성(子孫蕃盛)같은 민간의 소박한 염원을 적극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이렇게 민화는 선조들의 꿈과 사랑, 도덕과 윤리, 신앙과 종교, 학문존숭 등을 표현하는 기능을 하였으며 그 중 두드러진 것이 장식의 용도로써 화려한 채색과 뛰어난 장식성을 지니어 절대다수가 화조화로 이루어져 있다.
출처 李朝の 民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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