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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 쌍호흉배
시대 19세기
초록 흉배는 관료와 왕 및 왕족의 신분과 지위를 나타냈던 표장(表章)으로, 조선 왕조 오백 년을 통치했던 권력 집단의 위계를 가르는 표징물로서 사용되었다.임금은 곧 하늘이고 그가 거느린 신하와 백성은 땅에 비유되었기에 임금과 왕비 및 왕세자의 옷에 붙인 것은 보(補)라 불렀고 모양이 둥글었다. 그리고 보에는 용 문양을 수놓았는데 왕비와 세자빈은 용문과 봉황문을 겸용했다.문무 관원은 품계와 반별에 따라 등차되고 선별된 실제의 조수(鳥獸)가 표장으로 정해졌다. 경국대전이 편찬될 당시 규정을 보면, 문관 1품은 공작, 무관 1품은 호표를 수놓았고, 문관2품은 운안(雲雁), 무관2품은 호표를 수놓고, 문관3품은 백한, 무관 3품은 웅비를 수놓는다고 하였다. 이 쌍호 흉배의 호랑이는 무관의 용맹함을 상징하며, 한 쌍의 호랑이 주위에 장생무늬인 소나무와 구름, 풀 등을 곁들여 회화적으로 표현하였다.
출처 우리규방문화
자료명 일월도
시대 19세기
초록 일월도는 극도로 형식화된 산수가 장엄하게 펼쳐져 있다. 검푸른 하늘에는 붉은 태양과 흰 달이 함께 떠 있고, 네모난 바위들을 쌓아올린 듯한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솟아 있다. 산의 계곡 양편으로는 폭포수가 좌우대칭을 이루며 쏟아지고, 산 아래쪽에는 동심반원을 그리는 물결과 튀어오르는 파도가 보이고, 양끝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두 그루씩 서 있는 모습은 다른 일월오봉도에서도 예외 없이 표현되었다. 조선시대 궁궐의 어좌(御座) 뒤는 물론, 임금의 초상인 어진(御眞)이 걸린 뒤편에도 설치되었다. 이것은 일월오봉도가 임금의 생존시나 사후의 구별 없이 언제 어디서나 임금의 존재를 상징하는 동시에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일월오봉도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신하들과 귀빈들이 군왕의 덕망(德望)을 칭송하고 하늘과 조상의 축복을 기원하는 천보(天保) 詩에서 언급한 아홉가지 사물들이다. 해와 달이 각기 왕과 왕비를 상징하며, 다섯 개의 산봉우리는 중국전설에 나오는 세상에서 가장 높고 성스럽다는 곤륜산으로 역시 왕을 상징한다. 해, 달, 산, 소나무, 물은 천계(天界), 지계(地界), 생물계(生物界)의 영구한 생명력의 표상으로서, 제신(諸神)의 보호를 받아 자손만대로 길이 번창하라는 국가관의 투영이자 왕실의 지고한 권위를 나타낸 것이다.
출처 李朝の 民畵
자료명 현무
시대 1800
초록 고대 중국에서는 처음에는 하나의 알과 같았던 천지(天地)에서 반고(盤古)씨가 생겨나서, 그의 키가 커짐에 따라 하늘과 땅이 나눠졌다고 하는 반고전설이 있는데, 옛그림에서는 반고씨를 거북으로 그리고 있다. 중국신화의 신들 계통 속에 현무는 지위가 혁혁한 대신(大神)이다. 현무는 하늘의 28수중 북방신이며 또 전설 속의 수신(水神)·해신(海神)이다. 상고신화중에서 현무의 본명은 현명(玄冥)이고 물의 신이다. 현명은 곤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옛 신화에서 곤이 홍수를 다스렸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순직하였으며 사후에 그 혼이 변하여 세발 달린 자라가 되었다고 말한다. 전설중에 곤은 우산(羽山)에서 죽었는데, 우산은 전설 속에서 북극에 있는 산이다. 또 다른 면에서 현명의 명이라는 글자는 무(武)자와 서로 통한다. 이것이 바로 '현무'라는 이름의 유래이다. 그러나 무(武)자는 또 다른 단어인 '勇武'라는 의미를 갖는데, 『예기·곡례』중에서 공영달은 현무가 무용(武勇)으로 이름난 것은 거북이에게 껍질이 있어 업신여김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해석하였으며, 송(宋)의 고사손(高似孫)은 『위략』에서 거북은 물에 살며 물은 북쪽에 속하고 그 색이 검어서 현(玄)이라 한다. 거북에는 껍질이 있어서 공격을 막을 수 있으므로 무(武)라 한다. 라고 하였고, 『백호통』에는 영묘한 거북은 신구(神龜)이며 흑색의 정화로 오색이 선명하여 존망과 길흉을 안다. 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중국의 고대사유체계에 근본을 두고 있기 때문에 『예기』에서 언급된 사령(四靈)에 거북이(龜)가 기린(麟), 봉황(鳳), 용(龍)과 함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사령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천되어 거북은 현무로 대체되는 것이다. 현무의 형태는 漢代에는 거북이만으로 표현되던 것이 『후한서』 王梁傳에 보면 '玄武謂龜蛇'라고 되어 있어 거북이와 뱀의 합쳐지게 된다. 물론 거북의 몸에 뱀이 구불구불 말고 있는 기괴한 모양인데, 한대에는 비교적 단순하게 말고 있었지만, 그 이후에 심해지게 된다.
출처 정조건릉산릉도감의궤(正祖健陵山陵都監儀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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