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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 화조도3
시대 18세기말기~19세기초기
초록 화조화에는 온갖 종류의 꽃나무와 수풀이 그려지고 그 사이로 각양각색의 새들이 어루러지고 있어 꿈속같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특히 아름다운 꽃나무 사이로 쌍쌍이 짝지은 새들이 정겹게 묘사된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대개 부부간의 좋은 금슬과 집안의 평화를 염원하는 뜻으로 그려진 것이다. 이런 연유로 화조화는 주로 신혼부부의 신방이나 부인이 거쳐하는 안방을 장식하는데 사용되었다. 화훼화는 장식성과 실용성을 주요목적으로 제작된 것이며 풍부하고 화려한 색채효과가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출처 李朝の 民畵
자료명 미후
시대 1743
초록 대사례란 임금이 성균관에 나아가 석전례(釋奠禮)를 지낸 뒤 신하들과 활쏘기를 행하는 의식이다. 지방관이 행하는 향사례(鄕射禮)와 함께 중국에서 주대(周代)에 크게 성행한 전통적인 천자(天子)의 의식이다. 활쏘기의 개념은 신체를 단련시킨다는 의미보다 마음을 닦는 수단으로 제사 의식과 관련이 있었다. 대사례는 단순히 선비가 갖추어야 하는 육례(六禮)의 하나인 활쏘기의 기량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사자(射者)의 덕(德)을 보는 데 의미를 두었던 것이다. 왕의 표적이 웅후(熊侯)인 것에 반해, 미후는 신하들의 표적으로 푸른색 베로 감쌌다. 신분 질서를 중시한 유교 예법에서는 활쏘기의 표적도 신분에 따라 서로 달랐다. 주나라의 유교 예법에 따르면 천자의 표적은 호랑이 머리를 그린 호후(虎侯), 제후는 웅후, 경대부(卿大夫) 이하는 미후였다. 왕이 화살을 다 쏘고 물러나면 수행한 신하들이 짝을 지어 활쏘는 자리로 올라가 4발의 화살을 쏘았다. 활을 다 쏜 후에 신하들은 왕을 향해 절을 하고 내려왔다. 신하가 쏜 화살이 과녁을 맞추면 북을 쳤고, 맞추지 못하면 징을 울렸는데, 활쏘기가 끝나면 왕은 성적에 따라 상이나 벌을 주었다.
출처 대사례의궤(大射禮儀軌)
자료명 시사관상벌도1
시대 1743
초록 대사례(大射禮)란 임금이 성균관에 나아가 석전례(釋奠禮)를 지낸 뒤 신하들과 활쏘기를 행하는 의식이다. 지방관이 행하는 향사례(鄕射禮)와 함께 중국에서 주대(周代)에 크게 성행한 전통적인 천자(天子)의 의식이다. 활쏘기의 개념은 신체를 단련시킨다는 의미보다 마음을 닦는 수단으로 제사 의식과 관련이 있었다. 대사례는 단순히 선비가 갖추어야 하는 육례(六禮)의 하나인 활쏘기의 기량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사자(射者)의 덕(德)을 보는 데 의미를 두었던 것이다. 이 중 시사관상벌도(施射官賞罰圖)는 시사를 마친 후 점수에 따라 시상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병조정랑이 관직 성명을 외치면 맞힌 사람은 사단 아래 동쪽으로 나아가고, 맞히지 못한 사람은 서쪽으로 나아간다. 맞힌 사람은 왕이 앉아 있는 정전을 향해 꿇어앉아 군기사(軍器寺) 관원이 나누어 주는 표리와 화살을 상으로 받고, 맞히지 못한 사람은 사옹원(司甕院) 관원이 주는 벌주를 마신다. 화면에는 바로 이 순서가 그려져 있다.
출처 대사례의궤(大射禮儀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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