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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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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명 |
시사관상벌도2 |
| 시대 |
1743 |
| 초록 |
대사례란 임금이 성균관에 나아가 석전례(釋奠禮)를 지낸 뒤 신하들과 활쏘기를 행하는 의식이다. 지방관이 행하는 향사례(鄕射禮)와 함께 중국에서 주대(周代)에 크게 성행한 전통적인 천자(天子)의 의식이다. 활쏘기의 개념은 신체를 단련시킨다는 의미보다 마음을 닦는 수단으로 제사 의식과 관련이 있었다. 대사례는 단순히 선비가 갖추어야 하는 육례(六禮)의 하나인 활쏘기의 기량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사자(射者)의 덕(德)을 보는 데 의미를 두었던 것이다. 이 중 시사관상벌도는 시사를 마친 후 점수에 따라 시상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병조정랑이 관직 성명을 외치면 맞힌 사람은 사단 아래 동쪽으로 나아가고, 맞히지 못한 사람은 서쪽으로 나아간다. 맞힌 사람은 왕이 앉아 있는 정전을 향해 꿇어앉아 군기사(軍器寺) 관원이 나누어 주는 표리와 화살을 상으로 받고, 맞히지 못한 사람은 사옹원(司甕院) 관원이 주는 벌주를 마신다. 화면에는 바로 이 순서가 그려져 있다. |
| 출처 |
대사례의궤(大射禮儀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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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명 |
시사례도 |
| 시대 |
1743 |
| 초록 |
대사례란 임금이 성균관에 나아가 석전례(釋奠禮)를 지낸 뒤 신하들과 활쏘기를 행하는 의식이다. 지방관이 행하는 향사례(鄕射禮)와 함께 중국에서 주대(周代)에 크게 성행한 전통적인 천자(天子)의 의식이다. 활쏘기의 개념은 신체를 단련시킨다는 의미보다 마음을 닦는 수단으로 제사 의식과 관련이 있었다. 대사례는 단순히 선비가 갖추어야 하는 육례(六禮)의 하나인 활쏘기의 기량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사자(射者)의 덕(德)을 보는 데 의미를 두었던 것이다. |
| 출처 |
대사례의궤(大射禮儀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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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명 |
웅후 |
| 시대 |
1743 |
| 초록 |
대사례란 임금이 성균관에 나아가 석전례(釋奠禮)를 지낸 뒤 신하들과 활쏘기를 행하는 의식이다. 지방관이 행하는 향사례(鄕射禮)와 함께 중국에서 주대(周代)에 크게 성행한 전통적인 천자(天子)의 의식이다. 활쏘기의 개념은 신체를 단련시킨다는 의미보다 마음을 닦는 수단으로 제사 의식과 관련이 있었다. 대사례는 단순히 선비가 갖추어야 하는 육례(六禮)의 하나인 활쏘기의 기량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사자(射者)의 덕(德)을 보는 데 의미를 두었던 것이다. 웅후(熊侯)는 왕의 활쏘기에 이용되던 과녁으로, 표적의 중앙에 붉은 바탕에 곰의 머리를 그려 넣었다. 사방 5m정도의 크기였다. 신하들의 표적은 푸른색 베로 감싼 미후였다. 신분 질서를 중시한 유교 예법에서는 활쏘기의 표적도 신분에 따라 서로 달랐다. 주나라의 유교 예법에 따르면 천자의 표적은 호랑이 머리를 그린 호후(虎侯), 제후는 웅후, 경대부(卿大夫) 이하는 미후였다. 대사례에서 왕은 표적과 90보, 즉 110m 정도의 거리에서 4발의 화살을 쏘았고, 그때마다 매번 음악을 연주하였다. |
| 출처 |
대사례의궤(大射禮儀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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