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Home > 검색 > 연도별 원본자료 색인 |
검색결과 |
|
|
 |
|
| 자료명 |
호도 |
| 시대 |
19세기 |
| 초록 |
호랑이의 얼굴은 무서움이 아니라 우습고 친근하며 매우 해학적인 표정들이다. 소나무에 까치가 앉고 그 밑에 호랑이가 앉아 있는 그림을 작호도라고 하는데, 호랑이 그림에 까치가 등장하는 것은 민화 가운데 가장 독특한 유형이다. 호랑이 가죽은 문양이 아름다워 장식용으로 스이는 등 유용했으나 귀하게 여겼으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구할 수 없었던 호랑이 가죽 대신에 종이에 그린 호표피도로 집안을 장식했다. |
| 출처 |
李朝の 民畵 |
|
| 자료명 |
호랑이문베갯모 |
| 시대 |
19세기 |
| 초록 |
베개는 잠자거나 휴식할 때 머리를 괴므로 두뇌, 생명 활동과 직결된다고 여겼다. 높은 베개를 베고 자면 명이 짧다는 고침단명(高枕短命)이란 말은 삼천 년을 살았다는 전설 속의 인물 동방삭이 종이 석 장을 베고 잤다는 말과 대비된다. 건강과 생명에 대한 이러한 관념이 신앙적으로 이어져, 베갯모에 글자와 그림을 수놓거나 그려 넣었다. 잠자는 동안 좋은 꿈을 꾸어 소망이 이뤄지도록 기원하고, 또 이뤄질 수 있다는 주술적인 생각에서 베개 문양을 매우 중요시했던 것이다. 베갯모를 꾸미는 재료로는 자개 조각이나 쇠뿔을 가공한 화각 등을 들 수 있지만, 가장 많이 애용된 것은 비단 색실이다. 베갯모에 갖가지 무늬를 색실로 수 놓은 수베개가 성행하면서부터 베개 하면 수베개를 가리키는게 일반적이게 되었다. 부귀를 나타내는 무늬로는 모란, 국화 매화 등 꽃 종류가 있고 장수를 나타내는 사슴, 소나무, 거북 등 십장생이 있다. 또한 나비, 박쥐, 호랑이 등과 수복, 강녕 등의 문자가 많이 쓰였다. 이 베갯모의 호랑이는 사악한 것을 쫓는다는 제액초복(除厄招福)의 의미와 무관(武官) 가문의 용맹을 상징한다. 배갯모는 둥근 형태와 네모진 것도 있는데 남자의 것은 둥글게, 여자의 것은 네모나게 하였다. 이것은 하늘(남자)은 둥굴고, 땅(여자)는 네모지다는 것을 상징한다. |
| 출처 |
우리규방문화 |
|
| 자료명 |
홍룡포-보 |
| 시대 |
19세기 |
| 초록 |
왕의 복식으로는 종묘나 사직 등에 제사지낼 때는 제복의 역할을 하며 섣달이나 동짓날, 신하와의 조회, 책을 증정 받을 때, 결혼식 등에는 대례복으로 착용되는 면복이 있다. 신하들에게 하례를 받을 때는 원유관에 강사포를 착용한다. 통상적인 업무를 볼 때는 곤룡포에 익선관을 쓴다. 홍룡포는 왕의 시무복으로 세종 26년(1444)부터 조선 말기까지 제도화하여 사용한 포이다. 특히 이 홍룡포는 영왕이 일본에서 결혼한 뒤 왕비와 함께 귀국하여 1922년 순종을 배알할 때 입었던 것으로 현존 유일의 홍룡포이다. 겉감은 홍색 운보문사이며 안감은 남색 구름 무늬 비단이다. 겉은 둥글고 속깃은 무늬 없는 진옥색 비단으로 되어 있으며 소매는 배래에 굴곡이 거의 없는 형식이다. 보는 금사로 발톱이 다섯 달린 오조룡을 수놓았으며 여백에는 십장생, 구름, 화염 등을 배치하였다. 홍색 바탕에 수놓은 문양은 24개 능으로 이루어진 원형 테를 하고 중앙에 오조룡을 금사로 수놓아 메웠다. 구름을 박차고 튀어나올 듯한 용맹스러운 용을 정면에 배치하고 머리와 몸체 중간에는 화염문과 달을 배치하였다. |
| 출처 |
궁중유물(하나)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