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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의 상징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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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란
민화라는 명칭은 일본인 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붙인 것이다. 민중을 위해서 민중사이에서 태어난 그림이라는 뜻에서 민화라고 하였으나 현재 민화라고 분류된 그림들을 보면 궁중에서 사용되었고 화원들에 의해서 그려졌으나 민화로 분류되는 예가 있기에 그 개념에 있어서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민화는 서민 대중을 위해서 서민화가들이 그린 그림들과 조선시대 궁중을 중심으로 계승된 전통성과 인습성이 두드러진 회화, 두 가지 부류로 대별된다는 점이다.
민화의 기능과 역할
민화의 소재들은 순수감상을 위한 것들도 있지만, 그 이외에 기복축사(祈福逐邪), 벽사진경, 권선징악(勸善懲惡)과 같은 기원이나 소망, 그리고 민간신앙이나 종교적인 측면을 강하게 띠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문자도의 여덟 글자를 보면 일상생활의 도덕이나 윤리규범이 담겨있고, 책거리 그림에는 학문 존중의 뜻도 내포되어 있다. 특히 문자도는 당시 서민대중을 유교적 도덕관으로 교화시키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값싼 가격으로 다량 보급 가능했던 문자도는 서민사회를 유교적 도덕이나 윤리속에 질서있게 유지될 수 있도록 기여했으며, 모란꽃이나 알을 많이 낳는 물고기와 게, 그리고 백동자 등이 많이 그려진 것은 부귀영화(富貴榮華)나 부귀다남(富貴多男), 자손번성(子孫蕃盛)같은 민간의 소박한 염원을 적극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이렇게 민화는 선조들의 꿈과 사랑, 도덕과 윤리, 신앙과 종교, 학문존숭 등을 표현하는 기능을 하였으며 그 중 두드러진 것이 장식의 용도로써 화려한 채색과 뛰어난 장식성을 지니어 절대다수가 화조화로 이루어져 있다.
민화의 종류
민화가 담고 있는 내용과 다룬 주제는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분류된다. 주제나 내용에 따라 분류해보면 민화는 화조화, 동물그림, 까치호랑이그림, 책거리그림(문방도), 문자도, 수렵도, 일월도, 어해화, 신선그림, 풍속 그림 등으로 대별된다.
1. 화조도
민화에서 동물 그림과 함께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그림으로 장식적 아름다움 외에도 서민대중의 소망을 담은 주술적 의미까지 함께 담겨있다. 정통회화에서의 화조도가 모방되고 변형되면서 민화의 꽃과 새 그림으로 나타나게 되면서 그 주제의 성격이 상당히 변화되었다. 주제의 의미가 통속적인 소망상징으로 변질되면서 음양화합의 남녀 사랑을 기원하는가 하면 사실적인 표현으로부터 이탈하여 더욱 감각적이고 화려한 장식성을 띠고 그려지게 되었다. 화조도에서 주로 그려지는 대상으로는 모란꽃, 연꽃, 국화, 매화, 난초, 대나무, 원앙, 꾀꼬리, 꿩, 오리, 봉황, 닭, 나비, 벌, 수박, 포도, 참외, 가지, 오이, 석류, 오동나무, 버드나무 등이 있다.
2. 호도(虎圖)
서민들은 자기를 지켜주는 신령이 어디엔가 있다고 믿었는데 물에는 용왕이 산에는 호랑이가 있어 자신들을 액운으로부터 지켜준다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호랑이는 인간적이며 해학적인 성품을 가진 동물이어서 민화에 등장하는 한국의 호랑이 얼굴은 사나운 표정이 아니라 해학적이고 어딘가 바보스러우며 소박한 얼굴이다.
조선시대에 매년 정초가 되면 궁궐과 여염집에서 벽사의 수호신으로 호랑이를 그려 대문이나 집안 곳곳에 붙였다. 빙그레 웃음을 머금은 위엄이 있어 보이면서도 무섭지 않고 늠름한 자태가 우리 호랑이의 모습니다. 이런 호랑이 그림이 가지는 의미를 호축삼재(虎逐三災)라 하는데, 호랑이는 영험스러운 짐승이라서 사람에게 해를 가져오는 화재(火災), 수재(水災), 풍재(風災)를 막아주고 병난(兵難), 질병(疾病), 기근(饑饉)의 세 가지 고통에서 지켜주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믿었다.
3. 호작도(까치호랑이그림)
소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까치와 그 밑에서 이를 웃으며 바라보고 앉아 있는 호랑이를 소재로 하는 그림이다.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해 준다는 길조이며 인간의 길흉화복을 좌우하는 전능의 신으로 여겨지는 서낭신의 사자로서 우리와 매우 친숙한 새이고 호랑이는 서낭신의 신지를 받들어 시행하는 심부름꾼이다. 까치 호랑이 그림은 서낭신의 신탁을 호랑이에게 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4. 문자도
문자도는 옛 조상들이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윤리덕목을 주제로 한 글씨 위에, 그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 넣은 그림이다. 여기에 쓰인 글자는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치(恥)) 여덟 가지 글자이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있으며, 나라에 충성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이 있어야 하며, 예의바르고 의리가 있으며, 청렴 정직하면서 잘못된 행동을 부끄러워하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뜻의 글자이다. 이 글자들에 그림을 배합함에 있어 문자가 지니는 의미와 관련된 기물이나 고사를 인용하여 그리기도 하였다.
5. 수렵도
수렵도 우리 민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내용의 그림이다. 수렵도에 그려지는 사냥꾼은 모두 호복(胡服)을 입고 있는데 이것은 몽고풍으로 이러한 사냥그림의 연원이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알려준다. 민화에서의 수렵도는 원래 야만적 용맹성을 지녔던 몽고족에 의해 우리 국토가 짓밝혔던 사건을 풍자적으로 그린 그림이었으나 점차 후대로 갈수록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장식적인 의미가 화면을 압도하게 된다. 그래서 수렵도는 세속적 즐거움을 화려하게 꾸며 그린 장식화로 정착하게 된다.
6. 문방도(책거리그림)
문방도는 많은 책들과 붓이나 종이, 벼루 또는 꽃과 과일, 악기 종류와 안경 및 새와 도끼 등이 책과 함께 그려지는데, 한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그림이다.
문방도는 선비인 아버지가 아들의 방을 장식하기 위해 주문한 그림이지만, 한편으로는 책이 귀했던 시절에 책을 늘 곁에 두고 싶었던 선비의 염원이 담긴 그림이기도 하였다. 또한 문방도를 봄으로써 글공부에 게으른 것을 뉘우치고 면학에 정진하기도 하였는데, 글공부를 적극 권장했던 당시 생활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7. 사당도
사당은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사당그림은 조상의 묘소가 멀리 떨어져 있거나 사당이 없는 집의 가난한 후손들이 제사를 모실 때 사용하던 두루마리식 사당그림으로 이동식 사당인 셈이다. 그림에는 중앙에 위패를 모신 사당을 그리고, 위패 앞에는 제사에 필요한 과일이나 향, 향합, 촛대, 술잔 그리고 꽃병 등을 그려 넣었다.
조상을 극진히 모시던 조선시대 사람들이 사당을 짓고 제사 지내는 일을 후손된 도리로 알았던 유교적 윤리관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8. 일월도(일월오봉도)
민화로 분류되었으나 서민이 아닌 궁궐의 화려한 장엄용으로써 그려진 그림이다. 극도로 형식화된 산수화로 태양과 달이 함께 떠 있고,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솟아 있는 그림이다. 산의 계곡 양편으로 폭포가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고, 산 아래 파도가 보이며 양끝에 소나무가 두 그루씩 서 있는 전형을 따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조선시대 궁궐의 어좌 위는 물론, 임금의 조상인 어진(御眞)이 걸린 위편에도 설치되었는데, 일월오봉도는 임금의 생존시나 사후의 구별없이 언제 어디서나 임금의 존재를 상징하는 동시에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해와 달은 각기 왕과 왕비를 상징하며, 다섯 개의 산봉우리는 중국전설에 나오는 곤륜산으로 역시 왕을 상징한다. 해, 달, 산, 소나무, 물은 천계(天界), 지계(地界), 생물계(生物界)의 영구한 생명력의 표상으로서, 제신(諸神)의 보호를 받아 자손만대로 길이 번창하라는 국가관의 투영이자 왕실의 지고한 권위를 나타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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