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궤는 ‘의식과 궤범(軌範)’을 뜻하는 말로 조선시대 국가에서 중요한 의식이 있으면 그것을 하나의 전범(典範)으로 삼고자했던 뜻을 함축하고 있다. 모범적인 전례를 만들어 놓고 이를 참고함으로써 후대에 잘못을 범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려는 것이 의궤를 만든 주요한 목적이었다. 의궤는 행사보고서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특히 의궤에 첨부된 그림들은 당시의 생생한 현장모습들을 보여준다. 의궤에 남겨진 기록화들은 오늘날의 사진이나 비디오 테이프와도 같은 기능을 하는 것으로서 의궤에 나타난 다양한 시각자료는 기록과 함께 그림으로 당대의 현장상황을 전달하려 했던 우리 선조들의 투철한 기록정신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의궤는 문자 그대로 의식의 궤범을 만들어 뒷날의 사람들이 그 전례를 따르도록 한 것으로서 후대인들이 앞 시기의 의궤를 참고하여 , 국혼(國婚)이나 국장(國葬)등 국가의 주요한 행사를 원활하게 치룰 수 있게 하는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의궤에 기록된 주요 행사는 왕실의 혼인을 비롯하여 왕과 왕세자의 책봉, 왕실의 장례, 제사, 잔치, 활쏘기, 태실(胎室)의 봉안, 국왕의 행차, 궁궐 건축, 친농(親農)·친잠(親蠶) 행사, 중국 사신의 영접 등 국가나 왕실 행사 전반에 관한 것이었다.(도표 참조)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의궤는 조선전기부터 제작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조선전기의 의궤들은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과 같은 전란을 거치면서 대부분 소실되어 그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으며, 현재는 조선후기에 제작된 의궤들이 규장각,장서각,파리국립도서관, 일본의 궁내청 등에 소장되어 있다.
왕실의 주요 행사를 의궤의 형태로 남긴 것은 조선시대에만 보이는 독특한 전통으로서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형식의 의궤가 발견되지 않는다. 의궤는 우리나라에서만 비롯된 독특한 형식의 책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의궤에 기록된 내용은 행사의 과정을 날짜에 따라 기록한 전교(傳敎) 등 각종 공문서의 내용을 비롯하여 업무의 분장, 담당자의 명단, 동원된 인원, 소요된 물품, 경비의 지출, 유공자에 대한 포상 등에 관한 내용이며, 필요한 경우 행사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반차도(班次圖)와 건물 및 기계의 설계도 등을 첨부하여 당시 행사의 구체적인 절차나 건축물의 모습을 생생하고 입체감 있게 표현하였다.
그런데 의궤에는 행사의 내용에 관한 기록뿐만 아니라, 행사에 참여한 관리와 장인들의 실명(實名), 각각의 물품에 사용된 재료의 수량 및 비용, 그리고 실제 들어간 물품과 사용 후 남은 물품을 되돌려준 사실 등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유효한 내용들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 행사 참여자의 실명제는 작업자의 잘잘못만을 가리자는 취지는 결코 아니었다. 무명의 장인 한명 한명의 실명을 국가의 최고 공사보고서에 기록해줌으로써 그들에게 남다른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 작업에 참여하게끔 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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